[TV리포트 유진모 편집국장]
6년전 2명의 배우 지망생 여자를 만났다.
한 명은 마치 동서양의 우월인자만 물려받은
혼혈인인듯한 조화로운 미모와 몸매 그리고 큰 키까지 소유한 10대 후반 소녀였고
한 명은 소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모가 좀 떨어지는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누가 봐도 전자의 소녀가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예측대로 전자는
당시 꽤 유명한 연예기획사에 스카웃됐고 큰 CF에 연이어 캐스팅되며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연예계에서 얼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는 자기관리가 엉망이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 또 배우가 되기 위해 얼마나 피와 땀을 흘려야 하고
숨돌릴 틈 없는 트레이닝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듯, 혹은 그게 싫은 듯 과정에서 중도탈락했다.
자신만 성실하면 될 정도로 모든 조건을 갖췄음에도.
후자는 그저 묵묵히 연예계 주변을 오가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넉넉치 않은 집안을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배우로 꼭 성공하겠다며 칼을 갈았다.
말수도 적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경험이 없고 인맥이 형편 없어 터무니 없는 기획사도 몇군데 거쳤다.
돈을 벌면 얼굴을 고쳤다.
데뷔 후에도 성형수술한 사실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았다.
하도 안풀리니 이름까지 바꿨다.
그런 그녀에게 아주 작은 배역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역할이든 그녀는 군소리 하나 없이 성실하게 소화해냈다.
연기력이 부족하단 질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날부터 그녀가 움직이기만 하면 포털사이트 검색어 1, 2위를 다투기 시작했다.
거부감을 갖던 댓글들도 어느샌가 옹호일색으로 바뀌어갔다.
신인배우 이은래에서 어느새 스타로 발돋움한 이시영이다.
그런 그녀가 아마추어 복싱대회에 무려 3번이나 출전해 전부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현역선수라고 해도 은퇴가 멀지 않은 나이 서른에.
더구나 남자도 아닌 여자가.
그녀가 복싱을 해야 할 이유는 있다.
다이어트나 몸매관리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다.
그러나 대회에 출전할 이유는 전무하다.
아무리 얼굴보호장구를 착용한다 해도 그녀는 배우고 여자고 성형수술자다.
절대로 실전에 뛰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링위에 올라갔다.
영화 한편에 억대의 개런티를 받는 그녀가 설마 쥐꼬리만한 상금 때문에 글러브를 낄 리 없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커다란 명예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연기연습해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노리는 게 실리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링위에 오르는가?
그것은 바로 그녀의 인생궤적이 말해준다.
선천적으로 아주 뛰어난 미인도, 집안이 잘 살고 학벌이 훌륭한 엄친딸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쪽 조건이다.
일반인치고는 예쁘지만 김태희 전지현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핸디캡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이 있었다.
'안되면 되게 하라'가 그녀의 인생관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원래부터 권투광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돼있었는데 극중에서 권투를 해야 하기에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제작이 무산됐다.
그렇다면 그녀는 당연히 권투도장에 발길을 끊었어야 했지만
불가능을 향한 도전정신은 끝없는 호승심을 부추겼다.
그녀가 보여주는 교훈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그렇다고 외치며,
불가능이 클 것 같지만 부딪쳐 가능으로 바꿔놓는 끈기와 지구력 그리고 강한 의지는
'난 안돼'라고 도전조차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는 나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이다.
인기 여배우가 왜 링에 오르냐고?
그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오르느냐.
산에 오르면 몫돈이 생기냐'고 우문하는 것과 같다.
산악인들은 그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까'라고 현답한다.
이시영은 남들이 힘들다고 외치는 것을 극복해보고 싶은 탐험정신이 충만한,
내면에서 에너지가 들끓는 젊은이고 보답없는 성취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이 값지다고 생각하는
진취적 여성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는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연극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어가며 많은 인생경험을 한 사람이다.
가창력은 선천성이 우성일 수 있지만
연기력은 후천성이 절대적이다. 그
것도 직접경험에 의한 연기일 때 절절하다.
이시영은 김태희나 전지현같은 배우는 아니다.
연기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러나 고두심 김수미의 뒤를 잇는 연기파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있다.
영악한 그녀가 그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알고 있을테니.
기회와 가능성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
다만 사람마다 시력의 차이가 있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후회가 바로 그 증거다.
사진=이새롬 기자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