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준의영화창고

영화 "달콤한 인생"

강개토 2008. 6. 4. 07:29

영화 ‘달콤한 인생’은 한국 조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김지운의 탐미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연출에 힘입어 매우 고급스런 조폭영화의 한 전형을 만들어 내었다.
말쑥한 검은 정장에 폭이 좁은 타이의 세련됨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멋진 조폭, 마치 영화 속 선우(이병헌)의 이미지처럼. 김지운은 거칠고 저열한 대사, 피 튀기는 육박전, 섹시하지만 천박한 여성 대신 세련된 매너와 끝까지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는 ‘폼잡는’ 대사, 무자비하지만 제법 깔끔한 액션 그리고 청순하고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성으로 조폭영화의 이미지를 대체한다.
여기에 한 순간의 선택과 망설임이 인생을 달콤함에서 쓰디쓴 맛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통찰력,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을 활용하여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나와 우주의 관계 맺음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의 제기는 이전의 조폭영화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함이다.
‘달콤한 인생’은 배신과 복수의 코드로 집중된다. 선우의 추락은 보스(김영철)의 애인 희수(신민아)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희수를 감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고 이는 보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것을 탐한 일종의 배신이었던 것이다.
배신에 대한 보스의 처벌은 가혹했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선우는 자신의 처벌에 수긍할 수 없어 복수에 나선다.
이 영화에서의 배신과 복수의 코드는 그 주체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선우는 배신자이면서 복수자이고, 보스 역시 복수자인 동시에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부하를 한순간에 내치는 냉정한 배신자이다. 배신자와 복수자를 분리할 수 없는 구조는 그래서 그 주체들의 공멸을 가져 온다.
선우는 ‘비극적 영웅’의 여정을 따라 간다. 그는 보스로부터 소명(애인을 감시하는 일 그리고 그녀에게 남자가 있을 경우 두 사람을 제거하는 일)을 받았고, 소명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에게 시련이 다가온다. 그는 보스의 애인 희수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에 마음이 흔들려 희수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을 보고하지 않았고 당연히 희수와 그의 남자를 제거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스는 그의 처벌을 명하고 죽음 직전 선우 영웅은 부활한다. 그는 보물(총)을 얻고 동조자를 통해 괴물(보스)에게 접근하고 그를 물리친다. 그는 괴물로부터 공주(보스의 애인)를 구했으나 또 다른 복수자(에릭)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로써 영웅은 귀환하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달콤한 인생’이 비극적 영웅신화를 구현하면서 이를 또 다른 백일몽으로 귀결시키는 듯한 모호한 결말은 이 영화의 다양한 독법을 촉구한다.
선우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그가 평소처럼 거리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며 몸을 푸는 모습이다.
그는 잠시 꿈을 꾸었을까? 한순간의 흔들림, 마음의 움직임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불가해한 삶의 섭리를 불현듯 깨달은 것일까? 이 지점에서 영화는 조폭영화의 장르적 공식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명제에로 이동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 영화의 마지막입니다.
어느 깊은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스승 :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제자 : 아닙니다.
스승 : 슬픈 꿈을 꾸었느냐?
제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 : 그런데 그리 슬프게 우느냐?
제자 :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